미나마타의 비극: 수은 오염이 남긴 인재와 은폐의 역사
인과관계 규명의 어려움과 연쇄적 피해
화학물질이 지역 주민들에게 피해를 끼쳤을 때 명확한 인과관계를 밝혀내는 작업은 극도로 복잡하고 어려우며, 이로 인해 제2, 제3의 피해가 발생해도 적절한 대응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 빈번하게 발생한다. 일본에서 발생한 '미나마타병'이 바로 이러한 문제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미나마타병의 발단과 원인
일본 구마모토현 미나마타시에 위치한 '칫소'(전신은 신일본질주식회사) 미나마타공장은 1932년경부터 아세트알데히드 제조를 시작했다. 이 생산 과정에서 부산물로 메틸수은 화합물이 생성되었는데, 공장은 이 메틸수은이 포함된 폐수를 충분한 처리 없이 하천으로 직접 방류했고, 결국 바다로 유입된 메틸수은이 심각한 문제를 야기하게 되었다.
메틸수은은 어류에서 발견되는 주된 수은 화학종이며, 어류가 흡수한 수은의 약 90%가 인간에게 재흡수되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초기 징후와 공식 발견
1950년경부터 어패류, 조류, 고양이, 돼지 등에서 비정상적인 현상들이 관찰되기 시작했다. 물고기들이 수면에 떠올라 손으로 쉽게 잡힐 정도가 되었고, 패류는 부착하지 못하고 썩어갔으며, 새들이 공중에서 추락하는 등의 이상 현상이 나타났다.
수은 중독으로 인한 피해가 처음 인식된 것은 1953년이었다. 당시 마을의 고양이와 돼지, 새, 족제비 등이 광란하는 듯한 행동을 보이다 죽어가는 일이 벌어졌다. 이 시기부터 이미 마을 주민들에게도 병이 발생하고 있었지만, 아무도 그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1956년 4월, 6세 여아가 보행장애, 언어장애, 광조증상 등의 뇌 증상으로 병원에 입원했다. 며칠 후 3세 여동생도 보행장애와 손발운동장애, 손가락 통증을 호소하며 같은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 그 마을에서 동일한 증상을 보이는 환자들이 대량으로 발생하자, 환자들을 진료한 의사가 5월 1일 '원인 불명의 중추신경질환이 다수 발생하고 있다'고 미나마타보건소에 신고했다. 이날이 바로 '미나마타병'이 공식적으로 발견된 날이다.
미나마타병의 진행 과정
당시 진료기록에는 미나마타병의 일일 진행 상황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어 이 질병의 무서움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초기에는 발열 증상이 나타났고, 이후 식사 시 젓가락 사용이 어려워지고 신발 착용에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며칠 후에는 보행 시 균형 감각을 상실하고 언어 장애가 나타나며, 밤에는 잠을 이루지 못하고 점차 광조상태로 진행되었다. 시간이 경과하면서 동공 확대, 사지 운동장애로 이어졌고, 한 달 정도 지나면서는 실명, 손발 변형, 의식상실 등의 심각한 증상을 보였다. 이러한 기록들을 통해 미나마타병의 극도의 위험성을 확인할 수 있다.
원인 규명과 책임 회피
역학조사 결과 칫소 미나마타공장에서 바다로 배출한 공장폐수에 포함된 메틸수은이 원인으로 확인되었다. 메틸수은에 오염된 조개와 어류를 섭취한 어민들에게 수은중독으로 인한 중추신경계 이상이 발생한 것으로 1959년 공식 발표되었다. 그러나 기업 측은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부정으로 일관했고, 일본 정부가 인과관계를 인정한 것은 그로부터 9년이 지난 1968년이 되어서였다.
2001년까지 2,265명의 환자가 공식적으로 확인되었다. 당시 조사를 주도하여 원인을 규명한 구마모토 대학 의학부의 하라다 마사즈미는 공식적으로 미나마타병 발병 시작 연도로 규정하는 1953년 이전에도 많은 환자들이 발생했음을 밝혀냈지만, 기업과 정부는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기업과 정부의 이러한 무책임한 대응 방식은 결국 제2의 미나마타병을 초래하게 되었다.
제2의 미나마타병: 니가타 사건
니가타현 니가타시 아가노강 유역에서 제2의 미나마타병이 발생했다. 1964년 한 남성이 전신마비, 언어장애, 시각장애, 보행장애 등의 증상으로 입원한 사건이 발단이 되어 알려졌는데, 미나마타에서와 동일하게 인간에게 증상이 나타나기 이전에 이미 고양이들에게서 증상이 관찰되었다.
니가타의 경우도 미나마타와 마찬가지로 강 상류에 위치한 쇼와전공 공장이 아세트알데히드를 생산하면서 메틸수은을 충분히 처리하지 않고 하천으로 방류한 것이 원인이었다. 미나마타병 공식 발표 후 9년이 경과한 1965년에 니가타에서 미나마타병이 공식적으로 발표되었다.
반복된 비극의 배경
이러한 비극이 반복된 배경에는 기업과 정부의 무책임한 태도와 정보 공유가 이루어지지 않았던 당시 사회 시스템이 작용했다. 쇼와전공은 1955년경부터 아세트알데히드 공장의 설비 용량을 확대하여 생산량을 증가시켰고, 환자가 발생한 1964년 시점에서는 '미나마타병' 사례를 충분히 인지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2의 미나마타병이 발생한 이유는 앞서 언급한 기업과 정부의 미온적 대처에 기인한다.
일본 정부는 미나마타병 발생 이후 수은을 사용하는 질소공장에 대한 전국적 조사를 실시하여 실태를 파악했지만, 정보를 공개하지 않았고 공정 개선을 위한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쇼와전공은 수은의 위험성을 알고 있었음에도 당시 일본에서 아세트알데히드 생산 2위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공정을 변경하려는 시도를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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