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터섬 문명 붕괴와 중국 황사의 역사적 기원

이스터섬 문명 붕괴와 중국 황사의 역사적 기원

숲의 파괴로 인한 파탄의 더욱 극적인 사례는 유럽보다 규모는 훨씬 작았지만 문명 전체가 사라져 버린 이스터섬에서 찾을 수 있다. 이스터섬은 나무가 거의 없고 사람들도 얼마 살지 않지만 바닷가에 서 있는 거석상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사람들은 커다란 거석상을 누가 어떻게 세웠는지 불가사의로 생각했다. 

이스터섬의 꽃가루 화석을 분석한 결과 몇 가지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실이 밝혀졌는데, 이는 이스터섬 사람들의 멸망은 다음과 같은 역사적 사실과 연관이 깊다는 것이다. 이스터섬은 원래 나무로 가득 차 있었다. 이 섬에 500년경에 폴리네시아인이 이주하여 숲을 개척하고 농업을 짓기 시작하면서 섬은 서서히 변해 갔다. 

주민들은 바나나, 고구마, 사탕수수 등을 심었고 땅이 매우 비옥했기 때문에 많은 수확을 얻었다. 인구는 점차 불어났고, 불어난 인구에게 식량이라는 에너지를 공급하기 위해 더 넓은 숲이 개척되었다. 인구는 더욱더 불어나서 1100년경에는 만여 명에 달했고, 이스터섬은 최고의 번영기를 맞았다. 

이 번영기는 수백 년간 지속되다가 1680년쯤에 갑자기 인구가 급격하게 감소하면서 문명의 붕괴로 이어졌다. 그 이유는 중세 유럽과 마찬가지로 1400년경에는 숲이 거의 사라져 있었기 때문이다. 나무가 없어진 뒤에도 약탈농업은 한동안 지속되었지만, 지력이 고갈된 땅에서는 제대로 된 수확을 기대할 수 없었다. 

사람들은 점차 영양실조에 시달리게 되었고, 부족들은 마지막으로 남은 숲을 차지하기 위해 서로 싸웠으며, 결국 그로 인해 최후의 숲마저 파괴되고 말았다. 결국 사람들은 영양실조와 전염병과 그리고 나무라는 에너지를 차지하기 위한 부족 간의 싸움에 의해서 급작스럽게 줄어들었던 것이다. 이와 더불어 이스터 문명도 사라지고 말았다.

숲의 파괴는 유럽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중국에서는 유럽보다 훨씬 이른 시기부터 석탄이 연료로 활용되었다.750년경부터 1100년경 사이에 북부중국에서는 화석연료가 전례 없던 규모로 사용되었는데, 그 이유는 인구증가로 인한 연료 소비의 증가, 농업과 군사적 목적의 금속 수요 증가 그리고 750년경에 가속화되었던 북부 중국 여러 지역의 벌채로 인한 나무 부족을 들 수 있다. 

그 후 10세기 송대가 시작될 무렵부터 철강 생산업과 도시에서는 나무 부족 현상으로 지속적인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12세기부터는 북부 중국의 야금 산업이 여러 가지 이유로 쇠퇴하면서 목탄 사용도 전반적으로 줄어들었으나, 이미 숲이 심각하게 파괴된 상태였기 때문에 나무 부족은 전혀 해소되지 않았다. 

이와 같이 중국에서 숲이 파괴됨으로써 나타난 위기는 나무 부족만이 아니었다. 황토의 노출로 인한 환경문제로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는 것이 대규모 황사현상이다. 숲이 파괴된 후에 그 땅이 논으로 모두 전용되었다면 일년 내내 수분이 존재하는 논으로부터 흙먼지가 날아가기는 어렵기 때문에 황사현상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모든 숲이 논으로 바뀐 것은 아니었고, 언덕이나 산지의 황토 또한 밭으로 활용되지 않았기 때문에 건조한 시기에 중국 대륙에 강풍이 불면 흙먼지가 함께 날아올라 황사로 이어지게 되었다. 당시 파괴된 숲은 오늘날까지도 완전히 복구되지 않은 상태이며, 현재 중국은 사막화를 막고 황사를 줄이기 위한 숲 복원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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