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유럽의 숲 파괴로 인한 생태파탄

중세유럽의 숲 파괴로 인한 생태파탄

유럽에서 진행되었던 숲의 파괴는 로마의 몰락으로 강력한 통치권력이 사라지고 제국이 여러 작은 힘으로 분할되면서 일단 중단되었다. 물론 로마와 그리스의 숲은 복구가 거의 불가능한 상태까지 파괴되었고 그 상태가 지속되었지만, 북유럽지역은 로마의 몰락으로 원시림이 보존될 수 있었다. 

이 상태는 중세의 유럽이 남부의 아랍침입자들을 격퇴하고 경제적·학문적으로 크게 번영하기 시작했던 12세기부터 달라진다. 12세기 유럽에서 진행된 숲의 파괴는 인구의 급격한 증가로 인한 농지개척에 의해서 일어났다. 인구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이 시기에 유럽의 인구는 2배 또는 3배로 늘어났다고 한다.

역사가들은 인구증가의 원인을 당시에 도입된 바퀴 달린 쟁기라는 새로운 농업기술의 도입에서 찾지만, 이 기술이 오랜 기간에 걸쳐서 확산되었고 대부분의 지역에서는 그 이전에 이미 인구가 늘어났기 때문에 정확한 원인이라고 볼 수는 없다. 그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어쨌든 새로운 농업기술은 생산력을 증가시켰고, 이로써 인구증가를 200년간 지속시킬 수 있었다. 

이를 위해 계속해서 숲이 농지로 개척되었는데, 이 땅은 상당히 비옥했다. 그 결과 많은 지역에서 곡물생산이 크게 늘어났고 잉여량도 많아졌다. 그러자 인구가 더욱 늘어났고, 수천 개의 새로운 마을이 생겼으며, 이와 더불어 더욱 넓은 숲이 파괴되었다. 1050년경의 유럽은 숲의 바다에 사람들의 주거지가 섬처럼 박혀 있는 형상이었다. 

당시에 숲은 인간에게 적대적인 것, 요괴·유령·악마가 사는 곳, 사람이 살기에는 맞지 않는 곳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한 세기 반이 지난 1300년경에는 도처에 마을이 생겨났고, 숲은 거의 찾아볼 수 없는 형상이 되었다. 

1050년경에 진보적인 토지소유자들은 농부들에게 숲과 습지를 개척할 것을 권장했다. 그러나 1300년경에는 오히려 농부들이 유럽의 남은 숲을 더 이상 파괴하지 않도록 온갖 노력을 기울여야만 하게끔 상황이 완전히 바뀌었다. 

13세기와 14세기 유럽의 번영은 유럽 각 지역을 그물처럼 촘촘히 연결시키며 분업화를 촉진하는 결과를 가져왔다.동유럽의 귀족들은 엘자스 지방의 포도주를 마시고, 영국의 양모가 유럽의 다른 지역으로 수출되고, 또한 토스카나와 같은 큰 지역은 동유럽에서 곡물을 수입하는 상태로 발전했던 것이다. 이러한 번영과 더불어 사람들이 자연을 보는 관점도 달라졌다. 

그들은 자연이 합리적인 질서를 지니고 있으며, 인간이 이 질서를 이해할 수만 있다면 자연을 다룰 수 있다고 믿게 되었다. 또한 그들은 자기들의 번영이 숲이라는 한정된 자원을 파괴한 대가로 얻어졌다고 생각하지 않고, 이 자연의 자원이 무한정 존재할 것이라고 믿었다.당연히 그들의 번영도 끝없이 이어질 것이라는 낙관적인 인식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200년간의 번영은 14세기에 들어오면서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제 자연자원이 고갈되었던 것이다. 이 자원 위기는 한마디로 나무의 고갈로 인한 것이었다. 당시에 나무는 현시대의 석유와 같은 역할을 했다. 나무는 가정이나 성채의 난방, 건축자재, 대장간의 연료로 사용되었고, 또한 선박의 기초자재나 포도주통 등 매우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었다. 유리제조공장도 대규모 나무 소비처였다. 

사실 이 200년 동안의 계속적인 번영은 나무에 바탕을 둔 것이었다. 그러므로 이 나무라는 기초가 고갈되자 위기가 찾아온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사실 1050년에 숲은 무한한 것처럼 보였다. 나무 낭비도 대대적으로 이루어졌다. 숲을 개척할 때 나오는 나무를 시장에 내다 팔 수 없는 경우에 나무는 그대로 불태워졌다. 그러나 이제 사람들에 의해 짓밟히기만 했던 자연이 공격을 개시했다. 

1300년에 유럽에서는 거의 도처에서 나무 부족현상이 나타났다. 특히 광석을 녹이기 위해서 목탄이 필요했던 광산지역에서 부족이 심했다.14세기에 나타난 나무 부족으로 인한 파탄의 가장 극적인 사례는 유럽 전역에서 반복된 기근이었다. 물론 그 이전에도 기근은 있었지만, 그것은 국지적인 현상이었으며 1100년에서 1300년 사이에는 유럽 전역에 걸친 대규모 기근의 흔적은 없다.

그러나 14세기에 들어와서 기근은 일반적인 현상이 되었다. 만일 당시에 기상이변이 닥치지만 않았다면 기근이 그렇게 넓게 퍼지지는 않았겠지만, 200년 이상에 걸친 약탈농업으로 13세기 말이 되면 전반적으로 곡물수확이 크게 줄어들어 있었기 때문에 약간의 불리한 기상조건에도 사태는 악화될 수밖에 없었다. 바로 이때 기상이변이 몰아닥쳤다. 

물론 숲이 그대로 보전되어 있었다면 사정은 달랐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숲이 거의 파괴된 상태에서 유럽 전역의 생태파탄은 피할 수 없는 것이 되어 버렸다.기상이변은 습하고 추운 날씨의 형태로 나타났으며, 단 한 해에 그치지 않고 수년간 지속되었다.곡물비축량은 금방 바닥이 났고 곡물가격은 폭등했다. 처음에 가장 크게 피해를 본 사람들은 서민이었다. 

들은 전반적으로 굶주림에 처했고 영양실조에 걸렸다. 이때 페스트가 엄습했고 저항력이 약해진 사람들은 페스트에 조금도 저항하지 못하고 희생자가 되었다.인구의 4분의 1 이상이 페스트로 목숨을 잃었고, 그 결과 유럽 전역은 150년 동안 혼돈과 피폐 속에서 신음할 수밖에 없었다. 

숲의 파괴는 이러한 파탄을 초래한 가장 큰 원인이었다. 생태계는 이처럼 인간의 수를 줄이는 방식으로 옛 상태를 서서히 스스로 회복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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