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로마의 환경문제
로마는 그리스보다 도시화가 더욱 대규모로 진행되었으며, 전쟁 무기와 선박 제조 또한 더 활발하게 이루어졌기 때문에 자연 파괴 역시 그리스에 비해 훨씬 심각했다. 이미 도시국가이던 로마가 조금씩 팽창하던 시기에 평지의 숲은 농지 확장을 위해 상당 부분이 사라진 상태였다. 따라서 산지의 숲에서 벌목한 나무가 운송되어 왔는데, 나무가 사라진 산지는 농지를 더욱 확장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그동안 평지의 농장들이 지속적인 토양침식으로 점차 지력을 잃어갔기 때문에 농장주들에게 언덕이 농지로 제공된다는 것은 매우 반가운 일이었다. 또한 도시국가 때부터 끊임없이 전쟁을 치렀던 로마의 전쟁무기 제조를 위해서는 광산에서 구리와 철이 채굴되고 야금이 이루어져야 했는데, 나무는 이 두 가지 작업에도 필수적인 것이었다.
나무는 갱도의 갱목으로뿐만 아니라 야금하는 데 필요한 연료목재로서도 중요한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그리스에서와 마찬가지로 로마에서도 함대건조를 위해서 숲이 대규모로 파괴되었다. 로마가 해상강국이 된 시기는 제1차 포에니 전쟁이 진행되던 기원전 3세기 중엽이었다.
해상전쟁을 위해 로마는 대규모 함대를 유지해야 했는데, 당시의 전쟁 중에 백척 이상의 함선이 60일 만에 건조되었다고 한다. 그 후로도 로마는 수년간 수백 척을 더 건조했으며, 이 막강한 해군력으로 카르타고에 승리를 거두었다. 함대건조를 위한 목재는 처음에는 이탈리아의 숲에서 조달되었고, 이 지역의 나무가 점점 사라져 가자 이탈리아 밖의 다른 정복된 지역에서 나무가 수입되었다.
그 후 로마의 함대는 로마 지배하에 놓여 있던 나무가 풍부한 지역 어디에서나 건조되었다.
로마에서 전쟁무기와 함대건조 이외에 숲의 파괴를 크게 촉진했던 것은 로마시민이 최소한의 쾌적한 도시생활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목욕탕이었다.
기원후 4세기, 로마에는 11개의 호화로운 대형 목욕탕과 856개의 소규모 목욕탕이 있었으며, 이들에 필요한 장작과 목탄은 이탈리아에 남아 있던 숲을 여지없이 파괴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결국 4세기에는 나무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아프리카에서 장작이 수입되어야만 했다.
로마의 막대한 나무 수요는 이탈리아반도뿐만 아니라 시칠리아, 스페인, 소아시아, 북아프리카, 그리스 같이 지중해를 둘러싼 지역의 숲을 거의 황폐화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로 인해 지중해에서 로마 지배가 400년간 지속된 후에 이 지역의 산지와 평지의 삼림이 상당 부분 사라지고 말았다.
숲이 사라지면서 지중해 지역의 기후와 식물도 점차 바뀌어 갔다. 지중해에서 겨울철에 지대가 조금 낮은 지역에서 특히 많이 내리던 비가 더 이상 숲의 나무와 부엽토에 의해서 저장되지 않고 내리는 즉시 바다로 흘러갔고, 이때 토양을 함께 휩쓸고 지나가서 농지를 척박하게 만들었다. 여름의 뜨거운 열기를 식히고 조절해 주는 숲의 기능이 사라졌기 때문에 평균기온은 점점 더 높아졌다.
산간지역은 여름을 위한 물 저장소 역할을 더 이상 하지 못하게 되었기 때문에 강과 개울도 연중 내내 흐를 수 없게 되었다. 점점 더 많은 하천이 여름 동안에 바닥을 드러냈고, 그 결과 평지가 점차 황폐화되었다. 지중해 지역에서 숲의 파괴는 그 후로도 계속되었다. 계속되는 나무 부족으로 인해 파괴지역은 영국과 프랑스 같은 다른 유럽지역으로 확대되었다.
역사가들은 보통 로마 멸망의 원인을 북방 민족의 침입에서 찾고 있지만, 그 원인의 일부는 로마의 이런 반생태적 정책에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로마의 환경문제는 숲이라는 자연에너지원의 파괴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이미 이때 인구의 도시집중에 기인한 환경문제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로마에서는 그릇과 수도관 생산을 위해 납을 대량으로 사용했는데, 이로 인해 두 가지 문제가 발생했다.
하나는 납을 생산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납 증기 문제였고, 또 하나는 포도주나 물에 녹은 납이 인체에 축적된 결과 생기는 납중독이었다. 당시에 대규모 납과 은 광산이 있었던 스페인에 높은 굴뚝이 세워진 이유는 야금할 때 방출되는 증기를 멀리 대기 중으로 흩날리기 위해서였다. 이로 인해 납에 오염된 공기는 북유럽까지 날아갔는데, 이 사실은 현재 그린란드의 얼음탐구에 의해서 밝혀졌다.
로마인이 즐겨 마시던 음료는 포도주를 납 용기에 넣고 끓여서 만든 시럽이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당연히 많은 양의 납이 시럽에 녹아들어 갔기 때문에, 이것을 마신 사람들은 오랜 시간이 흐른 다음 납중독에 기인한 통풍에 걸렸다.
로마의 또 한 가지 환경문제는 인구가 밀집해 있던 로마 시내의 밤낮 구분 없는 소음이었다. 소음의 피해자들은 주로 서민들이었다.
그들은 길거리에 임시로 지어진 3, 4층짜리 건물에서 살았는데, 좁은 도로에서 달리는 짐수레, 술주정뱅이 그리고 위나 옆의 다른 집에서 들리는 여러 가지 소음에 밤새 시달렸다고 한다. 이를 피하기 위해서는 교외로 나가야 했지만 이들에게는 그만한 재물이 없었다. 이러한 사치는 부자나 누릴 수 있는 것이었다.
로마의 환경문제는 도시화로 인한 것이었다.
이미 이때부터 도시화로 인한 환경문제가 나타났는데, 특히 도시가 광산과 인접해 있는 경우에 환경문제가 심각했다. 광산지역에서는 야금을 하는 동안 비소, 수은, 납 증기가 방출되었고, 이것이 야금소의 연기에 섞여서 도시로 퍼지면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들 금속보다 심각하지는 않았지만 도시의 난방으로 인한 환경문제도 무시할 수 없는 것이었다.
겨울에 나무를 때는 것도 사람들이 밀집해 사는 곳에서는 문제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로마에서는 기원전 4세기에 이미 도시의 중심을 흐르는 티버강이 오염되어 식수로 사용할 수 없게 되자 상수도를 공급하는 고가 수도를 건설하기 시작하여 기원후 1세기에는 그 총연장 길이가 400km가 넘게 되었다.
상수도관의 재료는 납이 사용되었는데, 시민들은 납에 오염된 물을 마실 수밖에 없었고 만성납중독으로 고통을 받게 되었다.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