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그리스 함대 건조가 남긴 지중해 숲 파괴의 역사
숲의 파괴는 이미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커다란 문제로 대두되었다. 인간이 거주하기 이전 지중해 지역의 대부분은 숲으로 덮여 있었다. 그러나 이 숲은 에너지 확보, 약탈농업, 그리고 각종 기구, 특히 선박 건조에 의해서 크게 파괴되었다.
플라톤은 「크리티아스」에서 아테네 주변이 비옥하고 부드러운 흙이 사라지고 골격만이 남아 있는 말라 비틀어진 육체의 뼈와 같다는 은유로 숲의 파괴에 대해서 탄식했다. 그는 그 이전에는 산이 나무로 가득 차 있었지만 농지가 확장되면서 파괴되고, 기후변화로 갑자기 많은 비가 내리자 토양이 침식된 현상에 대해서 기술했던 것이다.
플라톤은 「크리티아스」에서 당시의 파괴상황에 대해 비유적으로 언급했지만 실제로 그리스의 섬들과 반도지역에서 숲의 파괴는 상당한 수준이었다. 현재 그리스는 나무를 거의 찾아볼 수 없는 민둥산들로 덮여 있다. 이는 고대 그리스 때의 숲 이용으로 인한 것만은 아니지만 그때 이미 상당 부분 사라진 숲이 19세기 그리스가 오토만 제국으로부터 독립한 이래 인구증가와 농지의 확장으로 더 철저하게 파괴된 결과이다.
그리스 문명이 쇠퇴한 후 그리스의 숲은 다시 넓어져 오토만 제국 지배하에서는 그리스 땅의 40% 정도가 되었으나, 그리스가 독립한 후에는 14%로 급격히 줄어들었다.
고대 그리스의 숲을 파괴하는 데는 농업뿐만 아니라 대규모 함선의 건조도 크게 기여했다. 기원전 5세기부터 아테네의 목재 수요 규모는 그 이전에 비해 크게 증가했는데, 그 이유는 지속된 인구증가와 건축규모의 확대에 있었던 것만은 아니다.
목재 수요가 그렇게 크게 증가한 이유는 주로 해군함대의 건조에 있었다. 당시에 아테네는 지중해의 해군 강국으로 부상하고 있었는데, 이는 대규모 함대에 힘입은 것이었고 함대건조를 위해서는 많은 양의 목재가 필요했던 것이다. 나무로 된 군함은 수명이 그다지 길지 않았기 때문에 배들은 지속적으로 새로 건조되어야 했다.
아테네의 숲이 이런 대규모 함대를 유지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던 것은 분명하다. 따라서 에게해의 섬과 소아시아의 동맹도시로부터 목재가 수입되었고, 이것으로도 충분하지 않아서 나중에는 레바논에서도 나무를 들여와야 했다. 지금도 볼 수 있는 레바논의 매끈한 언덕들과 민둥산들은 바로 이때 만들어졌다.
이러한 수입 노력에도 불구하고 기원전 3세기에는 대규모 목재 부족현상이 나타났는데 이로 인해 이 시기의 상당한 기간 동안 조선소와 광산은 작업을 할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하기도 했다. 광산에서 목재가 특히 많이 필요했는데, 그 심각성은 로마에서 아주 큰 문제로 나타났다.
댓글
댓글 쓰기